역사 및 연혁

우한시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8000~6000년전인 신석기초기와 중기시대에 선조들은 이곳 수로지역에서 번성했으며 석기를 사용하여 고대문명을 개척하였다. 황피구 판룽후(盘龙湖)기슭에 있는 판룽청(盘龙城)은 상나라시대에 건설되었으며 약 3,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한말에 강북은 취양(曲阳)현, 좐양(沌阳)현, 한진(汉津)현, 한양(汉阳)현(A.D.606년), 강남은 루난(汝南)현, 장샤(江夏)현(A.D.589년)으로 불렸다. 한나라이후 남북조를 거쳐 원나라와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우한은 수로와 육로의 교통중심지가 되었고 상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명나라중기 성화시대에 한양구이산(龟山)의 남쪽에서 진입하던 한수(漢水)의 간선수로가 진입구를 북산으로 변경하여 한커우신진(新镇)이  만들어져서 현재 우한3진의 지리적토대를 마련하였다. 명나라말기와 청나라초에 한커우는 상업대진(大镇)으로 화증지역에 군림하여 베이징, 쑤저우(苏州), 풔저우(佛州)와 함께 "천하4진"으로 알려졌고, 주셴(朱仙)진, 징더(景德)진, 풔산(佛山)진과 함께 "4대명진"으로 불리며, "초나라의 제1번화장소"로 되었다. 청나라 강희제 4년(1665년) 청나라정부는 한양문밖 바이산먀오(白鳝庙)아래에 상관(常关)을 세워 국내상품통과세를 징수하였다. 청나라 함봉7년(1857년), 호광총독(湖广总督) 관원(官文)은 쭝관(宗关)(현재 한커우 상차안(上茶庵))과 한관(현재 한커우 샤차안(下茶庵))을 포함한 10개의 세금징수소를 설립하였다. 1858년에 "천진조약"이 체결된후 한커우는 대외무역항구로 지정되였고 1861년 3월에는 공식적으로 외부세계에 개방되었다. 한커우가 외부세계에 개방된후 호광총독관원은 청정부에 상주(上奏)하여 1862년 1월 1일에 장한관을 설치하고 이듬해 공식적으로 세금을 징수하였다. 광서 25년(1899년)에는 한수이북지역을 분리하여 샤커우(夏口)청을 설치하였는바, 청소재지는 지금의 한커우이다. 그후부터 한커우, 한양도시구역과 우창을 통털어 "3진"이라고 칭하였다.

1889년 장지동이 호광총독으로 취임한후 우한에서 양무운동의 '뉴딜'을 시행하여 공장과 학교를 설립하고 신군을 조직하여 훈련하였다.민족공업도 이런 기세에 힘입어발전하고 우한근대산업의 발전토대를 형성하여 우한을 중국현대산업의 발상지중 하나로 만들었다. 1911년 10월 10일, 우한에서 부르주아계급이 이끄는 신해혁명이 일어나 후베이군사정부를 수립하고 중국의 마지막 봉건왕조를 전복시켰다. 1926년 12월 국민당정부는 우한으로 천도하고  1927년 1월 한커우와 우창은 우한시에 합병되여 징자오(京兆)구로 되었다.

1949년 5월 16일, 우한은 해방되여 정식으로 도시로 설립되고 3개진을 통합하여 중앙직할시로  편성되였다. 1954년 6월 후베이성관할의 성도로 변경되었고, 1984년 5월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의 비준을 받아 경제종합개혁 시범도시 및 단독경제계획 시행도시로 지정되었다. 1986년 12월에는 국무원에서 국가역사문화도시로 지정하였고 1992년 7월에는 대외개방도시로 비준하였다. 2007년 12월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우한도시권(후베이동부에 위치하며 우한을 비롯하여 황스, 어저우, 황강, 셴닝, 셴타오, 젠장, 톈먼등 9개도시로 구성되였다. 토지면적은 57,800 평방킬로미터이고 인구는 3200만명이 넘고 GDP는후베이성GDP의 63.25%를 차지하여 후베이성의 공업과 농업, 교통건설, 문화교육등의 핵심부분을 집중하였다.)을 설립하여 우한은 전국자원절약형, 환경친화적인 사회건설종합개혁실험구이기도 하다. 2010년 1월 국무원의 "둥후(东湖)신기술산업개발구를  국가의 자주혁신시범구로 건설하는 신청에 동의하는 회답"에 따라 둥후 첨단기술개발구는 베이징중관춘에 이어 우리 나라에서 두번째로 "국가의 자주혁신시범구"가 되었으며, 중부권 최초의 국가의 자주혁신시범구으로 되였다. 2010년 11월 국무원에서는 우한 우자산(吴家山)경제개발구를 국가급경제기술개발구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승인했고, 2013년 3월 국무원의 승인을 받아 상무부는 우자산경제개발구에서 우한린쿵강(临空港)경제기술개발구로의 명변경을 동의하였다. 지금까지 우한은 공식적으로 3개의 국가급 경제개발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3개의 진이 완전히 개발되었다. 2015년에는 국가에서 "국가혁신형도시의 시범지" 및 "종합혁신개혁시범구"로 지정되었으며 "국가문명도시"라는 칭호를 받았다. 같은해 우한도시권은 과학기술금융개혁혁신의 첫번째 실험구로 승인되었다. 2016년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중부지역의 부흥을 촉진하기 위한 13차 5개년계획"을 발표하여 우한을 국가중심도시로 건설하는데 분명히 동의하였다. 같은해에 국무원에서는 "우한시 종합혁신개혁 시범사업추진계획"을 공식 비준하였다. 6월에는 국가의 "창장경제벨트개발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여 중점적으로 3대 도시권을 배치하고 우한을 초대도시로 지정하여 내륙지역에 개방된 경제고지를 마련하였다. 2017년, 우한은 2년연속 국가문명도시와 국가위생도시의 명예칭호를 받았고, 재차 "장안(长安)컵"을 수상하였다. 국가식품안전시범도시 및 중국관광레저시범도시상를 수상하였고 세계디자인도시로 입선되었으며 C40도시(기후변화 및 도시저탄소배출에 진력하는 국제도시협회)의 "도시의 미래상"를 재차 수상하였다. 2018년에는 성공적으로 전국품질시범도시를 조성하였으며 국가의 종합국제전자상거래시험구, 국가서비스무역혁신 심화발전시범도시 및 국가의 ”대중교통의 도시” 건설시범도시로 지정되었다.